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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南悳祐 前 國務總理 永訣式 追悼辭
2013. 5. 22(수)







故 南悳祐 前 國務總理 社會葬 葬禮委員會


공동위원장 한덕수
불과 얼마 전 분출하는 국민적 욕구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의 능력과의 조화에 대해 걱정하시던 모습이 생생한데, 오늘 영원한 이별을 위한 자리에 이렇게 서게 되니 참으로 황망하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조국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으로서 경제발전을 통한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가슴 벅찬 비전을 현실로 옮긴 탁월한 정책 설계자이셨습니다.

평소 당신께서는 ‘나는 성공한 정책가도 아니고 성공한 경제학자도 아니었지만, 대통령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시장경제 이론의 틀 안에서 소화하려고 안간힘을 다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고한 경제철학과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한국경제를 이끈 우리 시대의 거인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경제 개발’과 ‘조국 선진화’에 바쳐진 끝없는 열정과 헌신 그 자체였습니다. 1969년 국가의 부름을 받고 관계에 입문한 이래 재무부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대통령경제특보, 국무총리를 거치면서 끊임없는 지적 사색과 빼어난 국제적 감각, 그리고 끝없는 나라 사랑을 통해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는 정책을 개발해내고 선진화를 위한 청사진을 그리셨습니다.

빈곤과 실업, 인플레이션의 악순환 속에서 우리 경제가 불모의 대지와 같았던 그 시절 사채동결, 부가가치세 도입을 통해 경제발전의 기초를 닦았고, 중화학공업 및 사회간접자본 육성으로 경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탁월한 경제적 지도력과 혜안이 없었다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께서는 항상 현장을 중시하신 경제정책 설계자이셨습니다. 1차 오일파동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극심한 경기 침체와 국제수지의 어려움을 극복코자 차관단을 설득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셨고 수입수요를 최소화 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 소형주택 건설프로젝트를 강하게 추진하셨습니다. 주말에도 허허 벌판이던 잠실의 소형 아파트 건설 단지를 찾아 공사 진도를 챙기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신께서는 대한민국 무역업계를 위해서도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1983년부터 91년까지 8년간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재임하시면서 무역센터 건립, 무역자동화 등 무역진흥 인프라를 확충함으로써 한국 무역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해주셨습니다.

또한 일선에서 물러나신 이후에도 항상 우리 경제와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시면서 우리 경제가 중대한 갈림길에 설 때마다 늘 깊은 경륜과 통찰력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님

오늘 우리는 당신께서 언제나 소망하시던 ‘자유롭고 살기 좋고 기업하기 좋고 기회가 균등한 사회’에 한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위기와 국제질서의 변화는 우리에게 무한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오늘 이렇게 떠나보내면 이제 이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통찰과 혜안을 또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속의 사표이신 당신을 더욱 그리워하며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께서 일생을 바쳐 이룩하신 경제 발전과 무역 입국의 토대 위에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나라와 국민을 위한 고뇌와 헌신,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언제까지나 대한민국 경제의 앞날을 밝혀주십시오.

삼가 남덕우 전 국무총리님의 명복을 빌면서 유가족 여러분께 심심한 애도의 뜻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