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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호] 한글초서와 서체추상
    김주성   2016-10-27
    
 
<선진화 포커스 310> 
 

한글초서와 서체추상
 
김주성(한국교원대학교 교수)  
 
 

 
본문이미지

 
 
 
이배용 회장님의 말씀대로 한류 3.0을 열어나가려면 우리는 좀 더 깊이 있는 우리문화의 매력을 매개삼지 않으면 안 되리라. 우리문화의 깊은 매력은 전통과 접맥되어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두 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 하나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문화를 재해석하는 일이다.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일과 재해석하는 일은 서로 역동적인 보완관계에 있다. 전통문화가 보존되지 않으면 재해석의 기회가 사라지고, 재해석되지 않으면 전통문화는 생명을 잃어버린다. 그렇지만 역사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재해석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전통유지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재해석작업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창조적인 재해석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창조적인 재해석 작업이란 바로 전통문화가 새로운 모습으로 현대생활세계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재해석 작업이 실패할 때 어떻게 되는가를 살펴보자. 필자가 경험한 서예계를 중심으로 말씀드려보겠다. 서예계는 전통서예를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오고 있다. 해방 후에 여러 대가들이 새로운 서체도 개발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서예작품도 만들어 냈었다. 그러나 최근 서예술은 현대미술의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현대의 생활세계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벌써 초등학교에서 습자시간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고, 그에 따라 서예학원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며, 비석을 세울 때 요구되었던 서예술이 이제는 컴퓨터폰트로 대체되었다. 서예인의 삶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고달퍼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현대서예는 마치 병들어 짜부러든 것처럼 서체구성미가 세기말적인 퇴폐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서예는 현대미술의 주된 흐름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리그로 귀착되었다. 공모전이 수없이 열려도 새로운 시도는 나오지 않고, 설령 나왔다 하다라도 주목받지 못한다.
 
필자는 어릴 때부터 붓을 잡았었기에 학자의 길을 가면서도 안타까웠다. 살펴보니 서예계는 현대생활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폐쇄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맴돌고 있었다. 한글세대가 사회전체를 지배할 정도로 성장했는데도 여전히 한문서예를 고집하고 있다거나, 현대의 문자생활이 가로쓰기로 정착되었는데도 아직도 세로쓰기를 고집하고 있다. 현대의 생활세계와 거리를 좁혀도 어려운 지경인데도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조차 없어 보인다.
 
필자는 1013일 오픈하는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들에서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왼가로쓰기 한글초서를 개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체추상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왼가로쓰기는 현대의 문자생활을 대표하고 있다. 오른가로쓰기는 한문서예에서도 편액을 쓸 때 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찍이 왼가로쓰기로 한글서예를 하셨다. 박대통령이 쓰신 비문이나 편액은 대개 왼가로쓰기이다. 예를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쓰신 광화문 한글편액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왼가로쓰기였다. 사실 한글서예는 가로쓰기를 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또박 또박 쓰는 서체이기에 세로로 쓰든 가로로 쓰든, 왼가로로 쓰든 오른가로로 쓰든, 필획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문서단 뿐만 아니라 한글서단까지도 여태껏 가로쓰기를 시도하지 않고 있다.
 
필자의 왼가로쓰기가 독특한 점은 초서이기 때문이다. 초서는 획이나 글자사이에 이음이 많기 때문에 세로쓰기할 때와 가로쓰기 할 때는 필법에 천지차이가 난다. 필자는 왼가로쓰기로 한글초서를 개발하였다. 한글서예에 없었던 왼가로쓰기 초서를 개발한 까닭은 한글서예의 미학을 새롭게 발전시켜 현대생활세계에 다가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 해서 곧바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에게 서예술의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면 그들에게 전통예술에 대한 애착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서체추상작업을 새로운 차원에서 했다는 것이다. 현재 서예술이 퇴조하자 동양화단에서는 갑자기 화제가 사라지더니 요즈음에는 낙관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동양화에는 도장만 찍힌다. 전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동양화에는 이제 필선조차 사라지고 있다. 동양화가들이 서예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붓질에 서투르고 따라서 전통적인 필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추상화를 말할 것 같으면 이제 동양화/서양화의 구분이 없다. 동양화가들의 추상작품은 기법이나 재료상으로 서양화가의 추상작품과 구별되지 않는다. 동양화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서체추상으로 사라져가는 동양전통을 살려보려 했다. 사실 추상화는 동양에 없었던 장르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서양에서도 근대 이전에는 없었던 장르이다. 근대에 들어와 세잔느에서 발원하여 인상파를 거쳐 큐비즘에 이르러 완성되었던 장르였던 것이다. 서양전통에도 없었던 장르였다면 우리사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들이 그들의 전통을 변화시켜서 추상화장르를 만들었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서양에서 발전시킨 추상화기법에서 우리는 한 걸음도 우리 곁으로 옮아오지 못했다. 호가 뾰족한 동양 붓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하면 동양화가들이 서예기법을 포기했기 때문인 듯싶다.
 
이제 동양화단의 추상작품에서는 붓질이 사라지고 번짐이 사라졌다. 동양화가의 추상작품에서 고유의 미감을 찾기 어렵게 된 것이다. 물론 예술가라면 우리 고유의 맛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 고유의 맛을 창조할 수 없다면 어떻게 보편적인 맛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여라는 독백은 괜한 투정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붓질과 번짐으로 현대미감을 표출하고자 하였다. 성패를 제쳐놓는다면, 아마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법으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우리 시각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서양인들이나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우리에게 독특한 삶의 지혜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현대생활의 심연에 자리 잡은 세계인들의 미학적 요청에 답하려면 우리는 전통의 재해석작업에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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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건의 글이 있습니다.
  서승경  ( 2017-04-23 )    수정  삭제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karmapolice  ( 2017-07-23 )    수정  삭제 답글 
(장준우)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세계에 어떻게 잘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지영  ( 2016-11-16 )    수정  삭제 답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생각이 납니다. 한글 또한 하나의 언어적 예술로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하성수  ( 2016-11-17 )    수정  삭제 답글 
우리 문화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기위해서는 우리 문화가 현대의 생활세계와 거리감이 없도록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상연  ( 2016-11-19 )    수정  삭제 답글 
한글은 모양, 크기에 따라 분위기가 정말 달라지는 재미난 언어인 것 같아요. 분명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윤다영  ( 2016-11-21 )    수정  삭제 답글 
저도 예전에 서예를 했어서 더 공감이 됩니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이라는 옛 말씀이 생각 나네요. 좋은 글 마음에 되새기겠습니다
  이효은  ( 2016-11-21 )    수정  삭제 답글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전도훈  ( 2016-12-08 )    수정  삭제 답글 
잘보고갑니다~
  서영우  ( 2017-03-17 )    수정  삭제 답글 
감격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