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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한국의 길' -제5편 이념과 체제-
    관리자   2012-09-13
       4020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제시하는 선진한국의 길
-1차 사회 명사와의 대화남덕우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일시: 2012 6 28
기록, 정리: 선진화홍보대사 10기 창조팀
강소라, 송민영, 김서영, 김재원
 
5편 이념과 체제
 
Q. 남북 분단으로 정치, 경제 체제에 관한 이념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나는 이념 문제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무릇 인간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빵과 자유와 안전입니다. (물질)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자유가 없으면 사는 보람이 없고, 안전이 없으면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이 사유이고, 자유 시장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재화와 용역이 생산되고, 소득은 이윤, 임금으로 대별됩니다. (자연자원을 지배하는 데에서 발생하는지대라는 특별한 범주의 소득도 있음.) 경쟁, 이윤, 가격, 임금이 자본주의의 주요 요소인데 민주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빵과 자유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민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고 다만 민주적 합의에 따라 국가의 고동선을 위해 자유를 제한할 수 있고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경제발전과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소련 사회주의는 빵과 자유를 양립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으면 그 배분과 용도를 정부가 결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따라서 국민들의 자발적 선택의 여지는 극도로 제한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을 생산하고 싶어도 정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정부의 의사에 따라 인적, 물적 자원의 용도가 결정되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마저 잃게 됩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정부 당국은 직물 공장에 사람이 모자라니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빵을 얻기 위하여 자유를 포기해야만 했던 소련 국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소련 체제가 붕괴하고 만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남북 통일은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Q. 보수와 진보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A. 우리가 말하는 진보는 자유주의(Liberalism)에 해당하고 진보(progressive)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드뭅니다. 진보주의는 어떠한 이념에 입각하여 사회, 경제적 급격한 변화를 주장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전통을 지혜의 원천으로 생각하여 공동체의 전통적 가치와 관행을 존중하고 급진적 변화보다 점진적 변화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진보이고 자본주의는 보수라고 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유럽의 사회주의 주요 정당들 가운데(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네덜란드의 노동당 등)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고 북한의 사회주의를 민주와 진보라고 보는 나라도 하나도 없습니다.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나라 중에서 사유재산과 기업 활동에 규제를 가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요컨대 지구상에는 순수한 사회주의도 없고 순수한 자본주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자의 개념적 특성이 혼합된 Mixed System이 있을 뿐인데 어떠한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문제를 논할 경우, 보수와 진보라는 말 대신에 좌파와 우파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Q. 시장경제를 강조하시는데 시장경제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A. 물론 문제가 많습니다. 시장경제는 자유와 경쟁을 속성으로 합니다. 그런데 경쟁이 있으면 반드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2원화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기본과제가 됩니다.
 
만약 패자와 약자와 빈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사회적 안정을 유지할 수 없고 만약 공권력이 강제적 수단으로 사회안정을 유지하려 한다면 자유는 말살(抹殺)되고 맙니다.
 
반면에 패자와 약자와 빈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자와 승자와 부자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면 발전과 진보가 없어집니다. 부자를 백안시하면 부를 축적하여 큰 일을 해 보겠다는 기업가정신이 죽어버리고, 경제사회의 발전을 어렵게 합니다.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을 가 보면 정주영 씨나 이병철 씨의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과연 이러한 선진국 수준의 병원이 세워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수가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면 내과와 외과와 같은 위험 부담이 큰 의료 분야를 지망하는 학생 수()가 적어지고 결국에는 의사가 부족하여 서민층을 위한 의료 서비스의 개선도 바랄 수 없게 되고 의학의 발달이 저해됩니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결합되어 있을 때에는 1 1표의 선거와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통하여 시장경제의 내재적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민주적 자본주의의 나라에서는 다양한 사회복지 제도가 실현되었고 빈자(貧者)를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국가의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공정 경쟁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주고 그 규칙을 위반한 자를 제재하는 동시에, 약자를 보호하고 경제 변수 간의 거시적 균형(성장과 분배, 국제수지, 재정수지 등)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Q. 신자유주의가 인간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단을인간 상품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신자유주의는 결코 인간을 상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주류 경제학의 분파(分派)로서 1970년대에 등장했는데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민사회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와 기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고 동시에 국부를 크게 하여 사회복지를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당시의 경제위기가 무리한 복지정책과 공공부문의 확대, 자본에 대한 지나친 규제로 초래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지금의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 들의 부채위기를 보면 그들의 주장에 일리 있다고 생각되네요.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미국의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이 자유주의를 주창한 경제학자인데 하이에크는 1974년에, 프리드만은 1976년에 각각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학자들이 인간을 상품화하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하나요? 인신매매는 노예제도 하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지금의 문명세계에 인간을 매매하는 노예제도가 있습니까? 좌파의 괴담에 속지 말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Q. 지금의 세계적 경제위기를 보고 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우리는 2008년에 세계적 금융위기를 경험했고 그 연장선 상에서 지금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나라,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이태리 등이 심각한 부채위기(debt crisis)에 직면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본주의 내지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대신할 만한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Lester c, Thurow 는 그의 저서자본주의의 장래에서 자본주의를 매우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그러나자본주의 외에는 선택지(選擇肢)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2006년에 Peter Barnes자본주의 3.0’이라는 책을 냈고, 작년에 영국의 Kaletsky자본주의 4.0’이라는 책을 냈고,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일보가 자본주의 4.0’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Kaletsky에 따르면 자본주의 1.0 Adam Smith의 고전적 자유방임주의(1776~1930)이고, 자본주의 2.0 Keyens의 수정 자본주의(1930s~1970s,)이고, 자본주의 3.0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Friedrich August von Hayek(1899~1992)의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대처 전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1980년대부터 약 20년간)인데, 세계적 재정-금융위기를 가져온 오늘의 자본주의(2007~2010)는 자연을 파괴하고, 부와 소득의 불균등을 확대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시장기능과 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장점을 살리고 자본주의의 폐단을 제거하는 현 단계가 자본주의 4.0’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적 재정-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 사장경제 자체에 있다고 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정부가 시정경제를 잘못 운용한 데에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의 메커니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운전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면 고장이 나거나 사고를 냅니다. 그런데 자동차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생산수단의 사유, 이윤을 위한 생산과 경쟁, 이윤, 임금, 지대(地代)로 대별되는 소득분배 형태를 구성 요소로 하고 있는데 이 구성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은 정부의 관리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Q.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사회구조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살아가자면 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한 기본적 가치가 무엇이고 그 가치를 위해 개인이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는 와해(瓦解)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이 점을 실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미국은 다수의 민족이 공존하는 Melting Pot(도가니탕)의 나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정체성이 뚜렷하고 그것이 국민 단합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은 국가이념을 생활화하게 만드는 교육의 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빵(물질)과 자유라는 것을 말해 왔는데 자유에 관하여는 그 깊은 뜻을 가르치고 빵에 관하여는 경제에 과한 지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경제학을 대학 교육의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경제 문제에 대한 이해와 의견 통합이 매우 어렵습니다
 
Q. 민주주의 목적의 하나는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정의란 무엇입니까?
 
A. Michael J. Sandel정의라는 책(한국판은정의는 무엇인가”) Best Seller가 되었다 하니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리라 생각됩니다. Sandel 2300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20세기까지의 저명한 철학자 들의 정의론을 검토했는데,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일의적(一義的)인 대답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가치관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마땅히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줄 것을 주는 것이 정의입니다. 예컨대 피리는 피리를 잘 부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정의입니다.
 
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J. Locke는 천부의 자연권(생명, 자유, 재산)을 존중하는 것이 정의이고, E. Kant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고, 어떠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 정의라 하였습니다.
 
J. Bentham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정의이고, 20세기의 철학자 John Rawls는 모든 사람이 합의한 규칙은 모두가 아무런 특권 없이 평등한 위치에서 지키는 평등적 자유가 정의라 했습니다.
 
Sandel은 이상과 같은 정의론을 검토한 한 끝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념으로 되돌아가서 공동체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정체성,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것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역사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발적, 혹은 보편적인 의무에 더하여 그가 속하는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충성의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보편적 의무와 충돌하는 경우가 있으니 또 다시 무엇이 공동선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행복, 자유, 미덕을 생각할 수 있는데 행복을 극대화하려고 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같이 이성적으로 공동선을 논의하여 합의점을 도출할 수 밖에 없고 그러자면 반론에 대하여도 따뜻하게 대하는 공공문화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법률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법률은 도덕문제에 대하여 중립적일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도덕적 신념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거론해 가는 것이 정의사회로 가는 최선의 길이다, 라고 Sandel은 결론지었습니다.
 
여기에서 인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고 하버드대학 교수로서 정의의 개념이라는 책을 쓴 Amartya Sen의 말이 생각납니다. “완전한 정의를 모색하기보다는 확실한 부정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는 한국에 관하여발전의 결과물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빈곤계층을 보호할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화공동체의 일원으로 부단히 공동선을 추구하고 잘 알려진 부정을 추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